(test) 파리 중심부 센강 변에 있는 중세 건물 콩시에르주리는 궁전으로 지었지만 14세기부터 정치범 감옥으로 쓰던 곳이다. 이곳을 거쳐 간 죄수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프랑스 대혁명기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1755~1793)다. 그곳에 76일간 수감돼 있으면서 재판받고 단두대의 이슬이 됐다. 남편 루이 16세는 그해 초 이미 단두대에 올랐다.
1788년 프랑스 재정은 지출 6억2900만 리브르, 수입 5억300만 리브르의 적자 상태였다. 왕실 비용으로는 3500만 리브르가 할당돼 전체 지출의 6% 수준이었다. 국가 재정을 파탄 낸 주범은 루이 14세와 루이 15세가 전쟁 등을 치르며 남긴 막대한 부채였다. 부채 상환에 들어가는 금액이 전체 지출의 절반(3억리브르)이었다. 하지만 극심한 빈곤이 나라를 휩쓸자 ‘사치와 타락의 원흉’이라며 외국인 왕비에 대한 원성이 높아졌다.
왕족으로 누린 화려한 삶, 그와 대비되는 비극적 죽음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영화, 소설, 뮤지컬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덧씌워진 잘못된 소문은 이후 역사적으로 상당 부분 해명됐지만 여전히 따라다닌다. 잊을 만하면 종종 국내 정치에도 소환되는데 최근에도 그 이름이 등장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얼마나 알고 인용하는지는 의문이다. (test)